사이토 다카시의 훔치는 글쓰기 - 논리적 글쓰기 훈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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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왜 장바구니에 넣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오랫동안 장바구에 넣어놨다가, 빌려 읽게 되었다. 책에서는 깨끗하게 읽은 책은 기억에 잘 안 남는다하지만, 도서관 책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플래그를 붙이고 인용을 블로그에 남기는 것 정도. 그리고 조금이라도 덜 잊기 위해 감상문이라고 쓰는 것. 서평이라고 근사하게 말할 수준이 아니니 '감상문'이라고 겸손을 떨어본다.
이상하게 이 책을 소설 작법서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다. 이 책은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훈련법'이다.
훈련법이다보니, '이 책만 읽으면 당신도 글쓰기 천재'같은 허황된 문구는 없다.
독서로 독해력 쌓기 -> 두려워말고 써보기 -> 구조를 파악하여 써보기 -> 독자를 상정하여 글쓰기
크게 위와 같은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독서로 독해력 쌓기
이 책은 처음부터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출처를 모르지만, 글쓰기를 잘하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을 해야한다고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보기.
이 책의 시작도 그 말과 통한다. 읽어서 '자신의 지식'이 없으면 쓸 수 있는 게 없다. 독해력이 없으면 글쓰기 능력도 생기지 않는다. 책의 성격도 잘못 기억했고, 얇은 책이라 사실 가볍게 이 책을 봤는데, 이 책…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부류는 아닐 거란 느낌이 들었다.
2. 두려워말고 써보기
저자는 초등학생들을에게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쉽게 시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여, 도라에몽 만화책을 건네주고, '진구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도 좋으니, 만화의 스토리를 써 와'라고 숙제를 줬다. 모든 아이들이 쉽게 숙제를 해왔다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얀 화면에 뭔갈 쓰는 걸 두려워한다. 대단한 뭔 말을 하지 않으면, 글을 망칠 것 같아서.
72쪽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지름길은 좋아하는 만화나 영화의 대사를 써보거나 노벨라이즈해 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속편을 써보는 것도 좋다. 상상의 세계가 확대되면 쓰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저자가 권하는 방법은 이미 이야기가 정해져있지만, 중간중간 빠진 내용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는 만화나 영화를 글로 옮겨보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좋은 방법이었으니, 모두에게 잘 적용될 것 같다.
3. 구조를 파악하여 써보기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건 '논설문'이다.
책의 각각에 세부적인 내용이 있지만,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건 '평론이 왜 어려운가'에 대한 설명을 만났기때문이다.
102쪽
평론은 기본적으로 어떤 주장이나 글의 내용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한 편의 글을 이해하려면 꽤 많은 지식이 필요할 때가 많다. 평론가들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려고 늘어놓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주장과 근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거를 붙이려고 하다 보니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글이 어렵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지식의 유무에 따라 이해도가 좌우될 정도로 어려운 글들도 있는데, 책을 많이 읽어 잘 알고 있으면 ‘아아, 이 이야기의 중심 의미는 이거구나’하고 알게 되지만 전혀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주어진 문장만 보고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소설(특히 상을 받은 소설)을 읽으면, 뒤에 평론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대체 왜 소설을 읽고 나서 내가 삼각뿔의 모습으로 주제를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평론을 봐야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완독 강박이 있기때문에 그런 평론마저 꾸역꾸역 읽었지만, 이제야 평론이 왜 어려운지 알았다.
소설을 해석하는 대표적인 해석론에 대한 배경 지식이 나한테 하나도 없고(나는 공대 출신으로, 창작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 시중의 작법서를 몇 개 읽었지만, 문학 해석 쪽은 전혀 아는 바 없다), 인물을 파헤치는 철학적 담론에 대한 지식이 미비하다.
그래도 이 책은 대부분의 평론이 A와 B의 대립으로 이뤄지기에, 키워드를 잘 따라가면 글을 파악할 수 있다고 다독인다.
105쪽
대부분의 평론은 ‘이항대립’으로 쓰여 있다. ‘일반적으로 A라는 새앆이 있는데, B라는 생각도 있다’라는 식이 바로 이항대립이다. 이 구조만 안다면 어떤 어려운 평론도 무섭지 않다. 평론이 어렵다는 사람은 A와 B를 뒤죽박죽 섞어서 막연하게 읽기 때문이다. 대립하는 것을 먼저 찾고 그것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읽으면 훨씬 글이 쉬워진다.
이러한 구조를 의식하면서, 글을 쓴다면 문장이나 표현은 어색하더라도 글 자체는 의도한 바를 전달하기 쉬운 글이 된다.
4. 독자를 상정하며 글쓰기
이 마지막 파트는 '자기소개서'에 대한 내용이다.
'자기소개서'를 읽는 기업의 입장에서 어떤 점이 부각되어야 하는지를 감안하며 글을 쓰는 거다.
161쪽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적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배웠느냐’에 중점을 두면 좋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변화했는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번화’에 대한 주제는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음악 동아리 활동밖에 쓸 게 없는 경우, ‘자신은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침부터 밤까지 기타 연습을 하여 이러한 고난도의 테크틱을 습득했습니다’라는 식으로 쓰면 상대의 마음에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써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자신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은 이것이다’라는 사실과 구체적인 에피소드뿐 아니라 그 덕분에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변화’했다는 것을 적어야만 한다.
‘모든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무대 위의 화려한 모습만 본 채 ‘쟨 원래 잘하는 애’라고 치부해 버렸는데, 기타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화려한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사실 그들은 매일같이 고통스러울 정도의 연습을 했고 그 연습이 있었기 때문에 무대가 완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도의 자신의 생각이 바뀐 부분을 담아줘야 한다. 그래야 상대에게 그 사람의 변화가 전해져서 상대방이 그 사람의 감수성과 학습 능력까지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또 그 사람의 솔직함, 어떤 과정 속에서도 무엇이든 잡아내려 노력하는 민감한 안테나, 결정적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힘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영 어떻게 글쓰기 공부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의 글쓰기 방법이 유용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책에서 논리적 글쓰기의 방법으로 '도쿄대 입시 문제'를 써보라고 권하는데, 이 책이 번역서임에도 해당 '도쿄대 입시 문제'를 대체할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117쪽
글쓰기란 하루아침에 실력이 느는 게 아니다. 빗물이 고여 웅덩이를 이루고 그것이 모여 호수를 이루듯 천천히, 꾸준히 해야만 이룰 수 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은 글을 읽고 쓰는 연습을 하는 것뿐이다. 단, 일기 같은 편안한 글이 아니라 좀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해보는 게 좋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것은 도쿄대학교 입시 문제이다.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문장을 기르기에 이만한 과제가 없다.
물론 찾으려면 어디엔가는 번역된 도쿄대 입시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예시로도 나온 '젠자'같은 용어나 문화적 맥락을 연습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국내 독자에게는 도쿄대 입시 문제보다 좀 더 국내의 실정을 반영한 사안과 주제를 다루는 연습을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었을텐데.
이 책 하나만으로 '훈련하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