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책 감상

철학의 쓸모 - 반쪽짜리 처방전

idtptkd 2024. 10. 20. 15:31
반응형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014960

 

철학의 쓸모 | 로랑스 드빌레르 - 교보문고

철학의 쓸모 | 인생의 모든 고통에 대한 해답은 철학에 있다! 아주 오래전 삶이 던진 질문에 니체,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몽테뉴가 답하다.출간 후 40주 연속 베스트셀러, 예스24 ‘올해의

product.kyobobook.co.kr

 

  이 책은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추천 문구를 보고는 읽게 됐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삶에 밀착한 고민을 풀기위해서는 차라리 에세이를, 철학을 맛보기 위해서는 철학 입문서(시간순 혹은 주요 저자별로 정리된 대중 철학서)를 추천한다.

 

12쪽
철학의 쓸모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 우리에게 진단과 소견을 제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는 우리가 실제로는 병에 걸린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머릿말에 있는 문구다. 이 책은 작은 주제들이 2~5쪽 분량의 글이 묶여있다. 이 책이 그러면 머릿말의 말처럼 '진단', '소견', '병에 걸린 사실을 깨닫게 함'에 도움이 되었는가?

  나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집에 가져오는 길에 가족이 이런 말을 했다.

"진짜 쓸모가 있으면 제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쓸모 없는 것들이 쓸모가 있다고 주장을 한다."

  가족의 손에는 맥주가 들려있었고, 내 손에는 '철학의 쓸모'라는 이 책이 들려있었다. '철학'이 쓸모가 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이 내게 쓸모를 주장하는 쓸모없는 거라는 건 알아챈 모양이다.

  이 책은 작은 주제를 너무 짧게 쪼개놔서 고작 두 쪽 안에서도 사람을 아주 기분나쁘게 만들며, 전혀 해결책이나 진단을 내려주지도 않는다.

 

* '현재의 행복에 대하여' 장에서

305쪽
행복의 비결은 멀리 있지 않았다. 수 세기의 방황, 수천 년의 좌절 끝에 사람들은 마침내 행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했다. 바로 현재를 사는 것이다. 단순하고 가볍게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온전히 몰두하는 것이다.
306쪽
더 이상 아무런 기대나 의지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듯 현재의 순간에 완전히 몰두하는 행복은 편안해 보이지만 ‘풀을 뜯어 먹는 사축 떼’의 허망한 행복이다. 인간은 절대로 현재를, 순간만을 살지 못하고, 언제나 미래와 과거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그리워하고, 미래에 올 행복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현재는 언제나 희망과 후회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행복에 대한 책을 읽었으면, 행복에 대한 나의 견해나 저자의 견해를 볼 수 있었을 거다. 근데 이 책은 그런 걸 모르겠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에도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해당 장을 306쪽의 발췌처럼 마무리한다. 저것이 정의인가? 저것이 진단인가? 저것이 소견인가? 아니면 저것이 질병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것인가?

  아니, 그냥 누군가(나)의 완독 강박을 스스로 원망하게 만드는 '쓸모없는 서술'일 뿐이다.

 

  차라리 이 책을 읽고 지적허영이 채워졌으면, 그래도 읽을만 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오히려 지적허영이라도 채워보겠다고 조금이라도 쓸만한 문장과 부분에 플래그를 잔뜩 붙였다. 그렇게 발췌를 했지만,  이 책을 덮었을 때 나는 지적혀영을 채울 수 없었다.

  '인간실격'을 읽었을 때는, 그 책의 유명세에 기대서 '그 책은 나와 맞지 않아'라는 고상한 척이라도 떨어볼 수 있는데, 이건 뭐. 쓸모를 증명하겠다는 책이 '내게 쓸모 없었다'를 깨닫게 되었다는 내 완독 강박만 깨닫게 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추천책이겠지만, 누군가(나)에게는 '아, 읽은 게 아깝다고 그러지 말고 일찍 덮을 걸'이라는 생각이나, '혹시나 하며 끝까지 읽었지만, 짜증나서 화풀이 리뷰라도 써야겠다'라는 일요일 오전을 망쳐버린 책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