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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작품소개: “삶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이 순간 살아 숨 쉬는 모든 당신이 기적이다.”죽음에서 삶을 바라보는 법의학자 이호가 들려주는어떤 죽음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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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투이 위워스 도켄트Mortui vivos docent,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의학도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라틴어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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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는 말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공군 수뇌부의 고민은 폭격기 승조원의 생존율이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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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소속 응용수학 자문단에서 통계학자로 일하던 에이브러햄 월드Abraham Wald는 이 계획에 치명적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아니요. 총탄 자국이 많은 곳이 아니라, 총탄 자국이 거의 없는 곳을 보강해야 합니다.”
귀환한 전투기들은 동체 중앙에 수십 발의 총탄을 맞고도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므로 동체 중앙은 그다지 중요한 부위가 아니며, 피격당해 추락한 전투기들은 생존해 돌아온 전투기와는 전혀 다른 부위에 총격을 받았기에 추락했을 거라는 말이다. 이렇듯 실패한 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성공한 사례만을 보고 잘못된 편향에 빠지는 것을 가리켜 생존자 편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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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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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구와 걷고 있는지, 누구와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곁에 있는 이에게 미소를 보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 일상의 소중함을 함께 누리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이미 떠난 사람을 붙잡고 슬퍼하느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유한한 시간을, 더 늦기 전에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213/256안락사로 번역되는 ‘유타나시아euthanasia’를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을 뜻한다. 그러나 원래는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여러 이유로 치료나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물에 대해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위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존엄사는 영어로 ‘웰다잉well-dying’이라고 한다.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가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역발상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흐름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사람답게 살다 가고 싶다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면서 주목받은 개념이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한다는 기존의 관점에서 의미가 확산되어 최근에는 잘 죽기 위한 최종 목표로서 웰다잉이 제안되기도 했다. 잘 사는 웰빙도, 잘 죽는 웰다잉도 중요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더해 ‘웰빈well-貧’을 이야기하고 싶다. ‘잘 비우는 삶’을 말한다. 삶을 길게 바라보면 내가 가진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폰도, 옷이며 신발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다. 영원히 움켜쥘 수 있을 것만 같은 돈도, 자동차도, 집도, 죽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한갓 사물에 불과하다. 그저 이 세상을 잠시 살아가는 동안 빌려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원한 내 것이란 없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