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책 내용 메모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idtptkd 2023. 3. 2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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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쪽

소설가들의 직업병인 피해의식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시기심, 분노, 우울증 그리고 자기 파괴에 대한 이야기다. 특정인을 겨낭하는 것이 아니며, 사실 나 자신이 이 모든 사항에 다 해당된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 듯하다.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창비 2012)을 읽다가 아래 대목에서 무릎을치며 웃었다.

작가들에게는 자신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을 얻은 작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책이 많이 팔리는 작가는 그 때문에 편견이 생겨서 문학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반대인 경우는 문단의 상업주의 탓에 형편없는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업고 후하게 평가되고 있다고 불만이었다.

 

166쪽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자 몇몇 젊은 작가들이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표정으로 "저도 주 수입이 글이 아니라 강연이에요"하고 고백했다.

 

224쪽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소설가 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런 조언에는 글 쓰는 삶을 꿈꾸는 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런 말만 들으면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학생들이 그런 상황을 모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매년 책을 내고 그게 1만 부씩 팔려도 연수입이 1,500만 원밖에 안 된다는 소린데 그건 도저히 못 하겠다'고 지레 좌절하는 듯했다.

 

242쪽

덧붙임2:

참 우여곡절이 많은 칼럼이다.

나와 십년지기인 에디터리 편집자가 2020년 창비의 자회사인 미디어창비로 이직했다. 그때 만나 차를 마시며 '소설가의 직업 생할에 대한 원고를 틈틈이 써서 에세이 단행본을 함께 만들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에디터리 편집자는 2년을 기다려주었고, 우리는 중간중간 원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절반쯤 에디터리 편집자의 기획물이다.

초고를 마친 뒤에는 원고 저자 교정을 세 차례 했다. 저자 교정을 할 때 에디터리 편집자로부터 '신경숙의 표정을 창비가 궤변으로 옹호하며 표절 기준을 무너뜨리려 한'이라는 문구를 뺼 수 없겠느냐는 요청을 받았고 거절했다. 거기까지는 교정작업에서 편집부와 저자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대화였다고 본다.

저자 교정을 마치면 작가는 별로 할 일이 없고, 편집부에서 표지를 만들거나 마케팅 계획을 세울 때 의견을 내는 정도다. 그 단계에서 위 문구에 대해서만 다시 구체적으로 수정 요청을 받았다. '궤변으로'라는 표현을 '나름의 논리로'로 바꾸고, 문단에 '(물론 신경숙 표정에 대해 창비와 나의 입장은 다르다)'라는 문장을 덧붙여 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교정 작업에서 편집부와 저자 사이에 오가는 정상적인 대화 내용도, 방식도 아니다.

솔직히 그 문구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채널예스』에 실어서 전문이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원고 아닌가. 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했고, 당시 창비가 그 표정을 궤변으로 옹호했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알지 않는가. 창비도 꽤나 곤욕을 치렀지 않은가.

그런데 이제 와서 ⓐ 신경숙 작가의 표정 여부는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장강명의 주관적인 주장일 뿐이며 ⓑ 창비는 신경숙 작가가 표절을 저질렀다고 보지 않으며 ⓒ 그러한 창비의 관점에도 일리가 있다는 소리를 내 책에, 내가 하는 말인 것처럼 써 달라고?

앞으로 출판사가 요구하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나의 주관적인 주장일 뿐이며 지구평면설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음을 밝힌다' 따위의 문장을 덧붙이는 데에도 동의해야 할까.

에디터리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요구가 개인 의견인지, 아니면 지시를 받은 건지 물었다. 에디터리 편집자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고, 나는 누가 지시한 거냐고, 그 상사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지시 내용이 "전화해서 인정에 호소하라" 등이었음은 나중에 들었다.

그렇게 미디어창비의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이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당신도 지시글 받으신 건가요, 아닌가요"였다. 그는 아니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상대만 설득하면 된다고 믿었다.

내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과 창비의 대응을 다시금 논란거리로 만들고 싶은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 문구가 실린 채로 책이 나온들 거기에 주목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미 몇 달 전에 인터넷에 올라간 칼럼이다. 수정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 문장을 그대로 실을 수 없다면 내가 다른 출판사를 찾을 테니 그냥 계약을 해지하자고 했다.

창비는 펴내는 모든 책에 대해 경영진이 찬성하지 않는 문구가 있으면 늘 이런 식으로 수정을 하거나 저자의 목소리로 '출판사는 저와 입장이 다릅니다'라고 덧붙이게 하느냐고도 따졌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건에 대해 정 출판사의 의견을 밝히고 싶다면 페이지 아래나 책 끝에 주석으로, 출판사의 목소리로, '저자의 의견은 출판사와 다름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으라고 했다.

미디어창비의 간부는 내 말이 옳다며 해당 문구를 고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걸로 일이 해결된 줄 알았다. 에디터리 편집자는 책 홍보를 준비했다. 미디어창비는 담당 마케터가 있지만, 모회사인 창비 마케팅팀 소속 팀장이 미디어창비 마케팅 팀장을 겸하며 책을 함께 홍보한다.

그리고 거의 한 달이 지나 에디터리 편집자의 연락을 받았다. 에디터리 편집자는 울먹이고 있었다. 마케팅팀 부장으로부터 "창비 이름으로 된 플랫폼에서 장강명의 책을 홍보하지 마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걸, 담당 편집자는 모르는 사이 이런 회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에디터리 편집자만큼 분노하거나 배신감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나의 감정적 반응은 허탈함과 가소로움이었다. 조직에 오만정이 떨어진 에디터리 편집자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고, 나는 계약해지를 요구하는 메일을 창비로 보냈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작가와 편집자를 속이려 든 출판사와 어떻게 작업을 할 수 있나. 그렇게 해서 미디어창비가 아닌 유유히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되었다.

신경숙 작가의 팬은 아니지만 그가 거둔 문학적 성취는 인정한다. 평소 필사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니 착각으로, 실수로,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을 자기 것인 줄 알고 작품에 옮겼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그렇게 넘어갈 수 있다. 신 작가의 사과가 썩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그를 둘러싼 비난이 과도하다는 생각도 했다.

문제는 당시 창비의 해명이었다. 창비는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으나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리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요사스러운 용어들을 덜어내고 일상 언어로 다시 쓰자면 이런 얘기다. '문장은 정말이지 비슷한데 신 작가가 베끼는 모습을 네가 보지는 못했잖아, 천문학적인 확률로 우연히 어렇게 된 걸 수도 있지. 그러니까 표절이라고 할 순 없어.'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어느 누구의 표절에 대해서도 표절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누구든 바로 그 천문학저긴 확률을 주장하면 되니까. 글쓴이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사실상 표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너진다. 표절 여부를 가릴 때 우리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물로 판단한다. 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두 글의 집필 과정이 아니라 닮은 정도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도저히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두 글이 유사할 때 우리는 나중에 쓰인 글을 표정이라고 판정한다. 음주운전 여부를 가릴 때에도 그렇다. 혈중 알코올 농도로 판단한다. 운전자가 "물인 줄 알고 마셨는데 그게 소주였나 보네요"라고 말한다고 해도,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도, 음주운전은 음주운전이다. 그런 때 "수치적으로 취기가 있다는 사실에는 합의할 수 있으나 의도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경기의 규칙이고, 창비는 그 규칙을 무너드리려 했다. 프로스포츠 선수가 반칙을 했는데 구단이 나서서 "그건 반칙이 아니다"라고 나선 격이다. 업계에 영향력이 큰 구단이 그 영향력을 나쁘게 행사하려 든 만큼 더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

나는 신 작가의 표절 논란이 일었던 2015년에도 같은 의견이었다. 페이스북에 "이게 표절이 아니라면 한국 소설은 앞으로 짜깁기로 말라죽게 될 것입니다. 젊은 소설가들이 창비에 항의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계간 『문학동네』 좌담회에 가서도 똑같이 말했다. 당시 한국 소설가들 중에 창비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 광경은 씁쓸했다.

 

257쪽

나는 그 기자에게 신문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수입이 30만 원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는 결국 상금 때문이었느냐고 물었다. 글쎄,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죠. 한국 소설 독자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재미있는 작품을 쓰면 되나.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사람들이 재미있는 자굼을 읽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나라 독자들은 유명한 작가가 쓴 작품을 읽어요. 일단 유명해져야 합니다. 상을 여러 개 받아서 유명해지자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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