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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세 번째 오해는 글을 ‘단번에’ 써야 한다는 일종의 잘못된 ‘작가-예술가’ 신화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나 일필휘지(一筆揮之), 문불가점(文不加點) 같은 사자성어들이 ‘잘 쓴 글’의 이상적 모델을 지칠하는 데 쓰이면서 이런 오해가 강화된 측면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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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처음부터, 단번에, 쉬지 않고 좋은 글을 쓴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에는 쓰레기와 다르지 않았던 우리의 글을 얼마나 어떻게 고쳐서 좋은 글로 만들 수 있느냐에 관한 일입니다.
작가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초고는 다 비슷하게 별로입니다. 이를 누가 더 많이, 오래, 될 때까지 끈질기게 고칠 수 있느냐가 우리를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로 나누는 기준입니다. 초고의 완성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고치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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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작가들이 하는 충고 중에 “초고를 가능한 한 빨리 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뛰어넘기의 기술은 바로 이 작업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일단 출발하고 나면 최대한 빠르게 달리는 거예요. 골인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중간 과정은 나중에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고치고 보충하고 비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흐름, 단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달리는 호흡은 중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하면 되살릴 수 없습니다.
초고를 쓰는 동안 우리는 단어 선택이나 문장의 완성도, 아름다운 메타포나 섬세한 묘사 같은 부분에 매달릴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은 끝까지 내지는 일이 가정 중요합니다. 그리고 뛰어넘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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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이 인지적 무의식을 알게 모르게 이미 잘 사용하고 있어요. 어떤 작가는 산책을 하고, 어떤 작가는 잔디를 깎습니다. 요리를 하거나 차를 내리거나 샤워를 하거나 걸레질을 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의식적 차원에서는 다른 일―매우 단순하지만 몸을 움직여 사용하는 일―을 하면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전장을 옮긴다는 점입니다.
많은 작가의 장벽이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해결에 이릅니다. 이 비밀의 원리는 몰라도 다들 해결 방법은 알고 있는 거죠. 의식(정신이 맑은 상태, 카페인·니코틴 등으로 각성한 상태)만 갖고 쓰거나, 무의식(잠에서 덜 깨거나 졸린 상태, 술·약물에 취한 상태)으로만 들이대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힘을 합쳐야 해요. 기억하세요.
글쓰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협업입니다.
글이 막히면 양치를 해보세요. 뭔가 떠오를 겁니다.
20%
우리의 삶은 우리가 고상하게 글을 쓰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작가들은 어디에서나 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쓰고자 했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역사 속 작가들이, 작가들의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장례식장에서, 신혼여행지에서, 키즈 카페에서, 직장에서, 화장실에서, 지하철과 버스, 비행기에서, 아픈 와중에도 그냥 썼습니다. 쓸 시간이 없다고, 방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불평하는 대신 말입니다.
25%
독서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면서 동시에 공부이자 연구이지만,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간혹 도장 깨기를 하듯 독서를 하고 있다는 작가 지망생들을 만나게 돼요. 그들은 세계 명작 몇 권, 하버드대학교 선정 최고의 소설 몇 권, 유명 작가의 필독 리스트 몇 권 같은 목록을 보물지도처럼 손에 쥐고 포식자처럼 책들을 ‘해치웁니다’.
과연 그 독서 목록을 모두 격파하고 나면 그들은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는 데 계란 한 알을 걸겠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작가의 눈으로’ 책을 읽어야 합니다. 꼭 그 책이 유명하건, 걸작이거나, 권수가 많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독자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범한 계란프라이를 먹으면서 셰프의 시선으로 요리를 감상하는 것이죠.
36%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누구의 내면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으며, 무엇이든 가능하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나머지 결과적으로 가장 망하기 쉬운 시점입니다. 말 그대로 작가가 신이 되는 거니까요.
물론 이 시점을 잘 사용하면 마치 신의 시선(God’s view)처럼 저 아래 방황하는 개미 같은 인간들을 굽어살피는 매우 위대한 이야기를 창조해 낼 수도 있습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나 코맥 매카시의 『로드』처럼요. 하지만 대개는 ‘아무 차나 다 잡아 탈 수 있는’ 이 몹쓸 능력 때문에 초보 작가들에게는 재앙이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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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시점의 최대 장점은 내면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여기에는 1인칭 시점의 최대 단점이 함께 들어 있는데요. 문제는 이 내면이 다루기 상당히 까다로운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종종 1인칭 시점이 망하는 이유는 내면을 잘 다루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중략)
1인칭 시점의 또 다른 커다란 단점은 이 시점이 시공간의 제약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점입니다. 현실의 나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속 ‘나’ 역시 어느 한 시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는데요, 그러다 보니 ‘내’가 보고 듣고 감각할 수 있는 현실은 매우 좁고 제한적입니다.
39%
예를 들어 주인공을 미니어처라고 한다면, 화자가 주인공을 3인칭으로 ‘내려다보는’ 시점인데, 이 내려다보는 거리와 범위가 어디까지냐에 따라 다시 세 가지 시점으로 세분화됩니다.
① 객관적 시점
② 전지적 시점
③ 제한적 시점
39%
객관적 시점의 카메라가 볼 수 없는 것은 단 하나, 인물의 내면입니다.
39%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 옮길 때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원작보다 못하다.” 왜 이런 말이 나올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만든 창작자의 실수나 부족함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소설에서 다룬 ‘언어화된 내면’이 결코 화면으로 옮겨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상 언어는 원칙적으로 ‘카메라’의 시선으로만 인물을 보여줄 수 있고, 거기에 내면은 포함되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객관적 시점은 소설 고유의 특징을 보여주는 시점이라기보다는 영상 언어에 가까운 시점입니다.
40%
전지적 시점은 가장 망하기 쉬운 시점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래요. 초보 운전자에게 500마력짜리 스포츠카를 몰게 하는 건 위험한 일이잖아요. 너무 많은 힘은 실수와 비극을 낳기 쉽습니다.
(중략)
첫 번째 증거가 바로 ‘머리 넘나들기’이고, 두 번째 증거는 ‘편집자적 논편’입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볼게요.
편집자적 논평은 작가가 이야기 속에 개입해 적어놓은 모든 종류의 개인적 의견을 말합니다. 마치 원고지 위에 빨간 글씨로 적힌 편집자의 첨삭처럼 말이죠. 소설 속 인물의 말이나 생각이 아닌, ‘작가가 말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으로 “삶은 원래 슬픈 것이었다” “인생이란 오렌지다” 같은 식의 알쏭달쏭한 아포리즘류의 문장이나 지나친 텔링(telling)과 설명, 작가의 취향 혹은 판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들이 그렇습니다.
(중략)
그건 잘난 척하는 남자들의 말투였다. 사회에서의 성공이나 높은 연봉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준다고 믿는 바보들의 말투.
3인칭 글에서는 이 부분이 말하고 있는 주체가 인물인지 작가인지가 불분명합니다. 단순이 주어가 생략된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장면마다 작가가 끼어들어 ‘논평’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독자는 피곤함과 거부감을 느낍니다.
43%
1인칭 다중 시점의 이점은 무엇일까요? 내면을 언어화해서 자유롭게 말하는 1인칭의 특장점을 고스란히 가져가면서도,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1인칭의 치명적 약점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서로 다른 사실의 조각들을 맞춰 진실이라는 하나의 입체를 구성하는 방식은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의 특성과도 잘 맞아떨어지죠.
다만 장을 구분하여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만 독자의 혼란이 최소화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중 시점 소설에서 각 장 제목에 해당 장의 주인공의 이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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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호기롭게 “내가 살아온 인생이 대하소설이야”라고 말하는 분 중에 실제로 대하소설을 쓴 사람을 저는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조정래 선생님이 아니라면요.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야기(story)와 소설이 필요로 하는 서사(narrative)가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야기와 서사는 무엇이 다를까요?
(중략)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라는 문장은 이야기지만,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라는 문장은 서사라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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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험한 것, 깨진 것, 실패한 것, 괴로운 것, 아픈 것, 부서진 것, 망한 것, 죽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주니까요. 뇌는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만이 ’의미 있다‘고 여기고 이를 더 듣고 보고 배우라는 뜻에서 도파민을 분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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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과 신경과학에 기반한 작법서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의 저자 리사 크론에 따르면, 첫 장면에 꼭 필요한 두 요소는 급박함(urgency)과 서스펜스(suspense)라고 합니다. 급박함이란 말 그대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도로에 구급차가 나타나면 시선이 집중되기 마련이지요. 우리가 구급차를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하는 뇌의 명령 때문입니다.
서스펜스란 자주 오해되거나 ’긴장감‘이라는 말로 평이하게 번역되는 개념이지만, 본래 개념은 어딘가에 ’매달려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절벽에 누군가 매달려 있다면 우린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마도 대다수는 걸음을 멈추고 바라볼 것입니다. 언제까지? 떨어지거나, 다시 올라갈 때까지. 서스펜스의 힘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49%
우리의 주인공은 무언가 간절히 원하거나, 어떤 것을 몹시 두려워한느 사람이어야 합니다.
50%
작가는 좋은 의미로 사디스트여야 합니다. 주인공을 괴롭히지 않는 작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약해져 풀어주는 작가는 결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인공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아픈 곳을 때리고, 다친 곳을 공격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주인공이 변화할 때까지. 고통과 시련에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으니까요. 주인공의 변화는 곧 이 작품의 결말이자 작가의 메시지입니다.
54%
주인공의 목표는 늘 이중적이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깊이를 만드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에요. 이제 남은 일은 이 두 가지를 어떻게 ’겹‘과 ’층‘으로 만드느냐에 대한 문제죠. 이런 결망을 생각해 봅시다. ’주인공은 옛사랑을 되찾기 위해 100억 원을 모았고, 결국 옛사랑을 되찾았다!‘ 어떤가요? 이런 이야기는 매우 표면적입니다. 외면적 목표와 내면적 목표가 모두 이뤄졌기 때문이죠. 겉과 속이 너무 쉽게 일치해 버리면 곤란합니다. 깊이가 생기지 않거든요.
핵심은 엇갈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엇갈리게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희극을 만들고 싶다면, 외면적 목표를 좌절시키고 내면적 목표를 성취시키세요. 비극을 만들고 싶다면 반대로 하면 됩니다. 외면적 목표를 성취시키고 내면적 목표를 좌절시키는 것이죠.
’100억 원‘이라는 외면적 목표와 ’가족과의 행복‘이라는 내면적 목표를 가진 주인공이라면 다음 네 가지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동화적 엔딩 | 해피 엔딩 | 새드 엔딩 | 우울한 엔딩 | |
100억 원 (외면적 목표) |
O | X | O | X |
가족과의 행복 (내면적 목표) |
O | O | X | X |
57%
오직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만이 우리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본질은 ’감각한다‘는 뜻과 상통합니다. 감각만이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59%
다섯 가지 색깔의 펜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내가 쓴 소설을 출력해서 앞에 두고, 읽어 내려가면서 다섯 가지 감각적 디테일(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이 등장할 때마다 표시해 두는 거예요.
63%
’하지 못해서 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부르지요. 그렇다면 프로페셔널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사람‘일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프로입니다. 프로페셔널은 ’무엇을 더해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빼야 할지‘ 아는 사람이니까요.
73%
중요한 건 한국어에서 자음의 유무나 개수가 정보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음이 많은 말일수록 복잡하고 정보값이 많고, 반대일수록 단순하고 빈 것처럼 들립니다. 전자는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전문가의 이성적인 말, 후자는 정보보다는 감정이 더 많이 들어간 감정적인 말처럼 드리는 거죠.
76%
작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은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정신적 맷집입니다.
76%
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상하다고 하는 부분은 정말로 이상할 확률이 높습니다. 90퍼센트 이상으로요. 그러나 그 부분이 이상한 ‘이유’에 대해서 50퍼센트 정도 걸러 들으세요. 더 나아가 앞으로 그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의견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작품 전체를 책임지고 고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피드백은 피드백일 뿐이에요.
80%
소리 내어 읽으면서, 처음부터 다시 타이핑하는 일이죠. 눈으로만 보는 방식과 손가락으로 다시 글자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은 결과물에 있어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퇴고는 눈으로 훑어보는 관찰이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더듬더듬 매만지며 나아가는 작업입니다.
80%
아마추어는 초고에서 멈추지만, 프로페셔널은 초고에서 시작합니다.
94%
어떤 글이든 쓰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그 글은 완성된 글이 아닙니다. 붂럽다고요? 민망하다고요?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보여준다고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닙니다.
내가 쓴 소설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는데,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 서점에서 내 책을 사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작가란 글쓰기로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글쓰기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문학적 소설일수록 자기표현이 중요하고, 대중소설일수록 의사소통이 중요하지만, 어떤 소설이든 의사소통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는지를 아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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